함양사람들2017.05.24 13:39

60년 함양시장 싸전 골목 지킴이

 

지리산함양시장 싸전 골목의 터줏대감 이길순(85) 할머니. 23살이라는 젊은 나이부터 시작된 시장생활이 60여년이 지나 이제는 팔순을 훌쩍 넘어섰다. 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함양쌀상회. 5월2일 장날에 맞춰 이길순 할머니를 찾았다.

“몇 년도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23살 때 그해 10월12일 함양장날에 처음 장사를 시작했지” 그렇게 할머니는 굴곡 많은 60여년 시장 인생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어. 먹고 살기 어려우니까 뭐라도 해야 하고, 그래서 장사를 시작했지” 60여 년 전 함양중앙시장은 지금의 자리가 아닌 경찰서 인근으로 형성됐었다. “처음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 콩과 보리를 여러 자루 사서 진주 사람한테 넘겼는데 이게 팔고 나니 남는 게 없는 거야. 첫 장사인지 알고 돈을 내먹은(떼먹은) 거지.” 한마디로 사기를 당한 것이다. 이후에는 혼자 여러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를 하면 돈을 번다고 해서 보따리 장사도 하고 그릇장사도 하고 안 해본 장사가 없어.” 버스를 탈 돈이 없어 걸어서 백전으로 안의로 5일장을 다녔다. “고생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지” 정성스럽게 만든 떡을 함티(상자를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에 이고 안의장도 가고, 인월장까지 다녔다. “예쁘다는 소리도, 젊다고 집적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욕도 참 많이 먹었어” 새벽에 일어나 도구통(절구통)에 찌어 떡을 만들어 시장에 팔러 나갔다. “새벽에 호롱불 켜서 식구들 먹으라고 밥 해놓고 갓난아이 들쳐 엎고 장에까지 갔지” 어려웠던 시절, 차비가 있으면 버스라도 타지만 그것도 아까워 걸어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인월장까지 40리, 안의장은 30리, 생초장이 20리, 백전장도 20리, 수동장은 15리, 할머니가 떡 함티를 이고 갓난쟁이를 엎고 걸어 다닌 곳으로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는 살기가 너무 힘들어 장사를 해도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야. 지금은 그때 생각하면 부자지 부자” 지금도 어렵지만 그 당시 힘들었던 기억에 눈물까지 흘리신다.

이야기 중간에도 연신 “나는 까막눈이야. 배운 사람이면 차근차근 이야기할건데 아무 얘기나 해도 되나”라며 쑥스러워 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성당에 있는 학교도 다니고 살던 곳 대실에 있는 학교도 다녔지만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단다. “장사 머리에 맞게 공부를 했으면 뭐가 돼도 됐을 거야” 할머니는 장사를 하면서 ‘방정스럽다’ ‘똑똑하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장사는 예년만큼 되지 않는다. “장사가 너무 안 돼. 지금은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나면 딱이야” 그래도 몸이 많이 좋지 않은 이상은 매일 가게 문을 연다. 어쩌다 힘에 부치면 가게 문을 열지 못한다. “이때까지 장바닥 물 먹고 살았으니 장사 안 된다는 말도 못해, 너머(남의) 돈으로 살았잖아”

콩 종자를 사러 온 오랜 단골이 들렀다. “잠시만 있어”라며 뒤쪽 창고에서 굵고 좋은 햇콩을 들고 나온다. “이게 지곡에서 가져온 건데 아주 좋아”라며 건넨다. 할머니는 농가에서 농사지은 것을 가져오면 이것을 사서 판매한다. “이거는 지곡, 이거는 수동에서 가져온 거야. 내가 종자 줘서 잘못됐다는 소리는 한 번도 안 들어봤어” 자랑스럽게 말한다.

젊었을 때는 ‘쌩쌩’ 빠르게 움직였다는 할머니. 이제는 허리가 제법 많이 굽었다. “허리만 꼿꼿하면 좀 많이 다닐 건데 23살 때부터 무거운 것 들고, 이고 했더니 허리가 펴지질 않아” 세월이 흐른 만큼 할머니의 허리도 함께 구부러졌다. 20kg자리 쌀 포대를 들고 날랐으니 오죽 했겠나. “쌀만 팔아봐야 뭐가 남아. 40kg 쌀 한 포대 팔아봐야 5000원 벌기 힘들어 쌀이 이문이 제일 적어”
지금은 시장 인근에 단칸방을 얻어 생활하는 할머니. 60여년 시장에서 생활하며 가족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줬다. “부끄러울 것이 뭐 있어. 남한테 피해 안 끼치고, 내 앞가림하고 살고 있는데” 힘에 부칠 때까지 지리산 함양시장을 지켜 나가겠다는 이길순 할머니의 힘찬 다짐으로 이날의 인터뷰가 마무리됐다.
강대용 기자

Posted by 주간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