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사람들2017.04.18 11:18

가슴 뛰는 삶을 사는 지안재 바리스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가는 함양 지안재. 그 정상 포토존 옆에는 어느 때부터인가 푸드트럭이 지나는 길손들을 반긴다. 굽이굽이 이어진 지안재를 바라보며 카페를 운영하는 공경완씨. 얼핏 커피를 만드는 그에게는 전혀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지만 그는 경추손상장애인이다. 경추손상장애는 목뼈 아래로는 팔도 다리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다. “처음에는 모두 미쳤다고 했어요. 저도 사실 자신은 없었으니까요” 오전 11시께 푸드트럭을 직접 운전해 지안재 정상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혼자서 가게 문을 연다. 푸드트럭은 최대한 그가 혼자서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이 트럭을 만드는데 1년이 걸렸어요. 직접 운전할 수 있게, 또 직접 커피 등을 만들 수 있게요” 


 

그는 2014년 9월부터 현재의 지안재 정상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곳에서 커피를 판다. 매일 나와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그와 같은 장애를 가진 이가. 휴천면 금반이 고향인 그는 사고로 인해 목 아래 부분의 감각을 모두 잃었다. “25년 전 그러니까 21살 때 잠깐 군대 가기 전 아르바이트로 운전을 하다 큰 사고가 났어요. 재활 등을 통해 현재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상황이지만 손가락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팔의 기능도 40% 밖에 할 수 없어요.” 그가 가장 힘든 부분은 한 겨울과 한 여름이다. 신경이 손상된 목 아래쪽으로는 체온 조절이 되지 않는다. 한겨울 몇 시간씩 장사를 하다 보면 몸이 꽁꽁 얼어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다.

처음 푸드트럭을 준비할 때는 전국적으로 장애인이 운영하는 곳이 있을 줄 알고 이곳저곳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 곳도 장애인이 운영하는 곳은 없었다. “휠체어 타고 이런 장사하는 미친 사람은 저 밖에 없을 겁니다. 구경도 많이 옵니다. 저게 가능한가 하고.” 푸드트럭을 만드는데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직접 운전할 수 있게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운전석, 그리고 트럭에 오를 수 있는 리프트, 커피머신과 여러 가지 용품들까지 직접 그의 손을 거쳤고 그의 아이디어가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라도 장사를 하는 것이 어딥니까” 그는 장애인 휠체어 럭비 선수로 뛰기도 하는 등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의 푸드트럭에는 음료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팔찌와 머리핀 등 예쁜 액세서리들이 준비되어 있다. “아내가 직접 만든 겁니다. 처형이 전주에서 공예 쪽 명인으로 집사람이 배워와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액세서리는 정해진 금액이 없다. 기분 좋으면 싸게 주고, 특히 비싸다고 말하면 안 팔기도 한다고.

]지안재는 한겨울을 빼면 나머지 계절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손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하루를 그렇게 보낸다. “의아해 하는 경우는 있지만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 같아요. 몸은 불편하지만 머리는 살아있으니까요.”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땐 상당히 쑥스러웠다. 이제는 찾아오는 손님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지안재와 오도재에 대한 역사도 전해주고, 함양의 관광지도 알려주는 등 문화관광 전도사 역할도 한다.


 

그는 손님이 없을 때는 구불구불 지안재를 내려다보며 사색에 잠긴다.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조만간 드론을 사 지안재를 넘어 오도재 정상까지 날려보고 싶단다. “그렇게 힘든 부분은 없어요. 제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시켜서 한 일리라면 원망이라도 하지만 제가 선택한 일이잖아요” 그가 만든 커피는 맛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손님들이 선호하는 커피를 만들었다. 원두도 많이 주문하지 않고 그때그때 주문해서 신선도를 유지한다. 날이 좀 더 풀리면 츄러스와 커핑빵도 함께 팔 계획이라고. 아내와 3살 아이 등 3가족의 가장인 그.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니까 마음이 편하단다. 

“인지도를 높이려면 꾸준하게 자리를 지켜야 해요. 손님들이 지안재를 왔을 때 그 자리에 커피 파는 사람이 있다. 그분들과의 약속이잖아요” 20대 초반 사고로 장애를 입고 2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그의 삶에 대한 감동과 경의가 느껴지며, 스스로 힐링이 되는 소중한 만남이었다.
강대용 기자

Posted by 주간함양